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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정공>삼세효열록(三世孝烈錄)휘재기(諱在璣)
三世孝烈錄 蘆使奇文簡公序趙氏忠孝錄而贊之曰有一於此足以範俗垂况四世一心旣樹之又穀似之綽楔爼豆固其所也噫斯可以盡之矣盖其源深故其流長至有然蓮村父子二公之孝行及其孫婦李氏之烈何其偉爾昔閔氏之孝夫子稱以無間言令女地烈朱子編之小學此萬世筆法也今二公之孝宗族信之鄕黨稱之剡薦至於九度則其無溢辭而有實行可知矣謹按知然諱在璣字舜七農隱虔谷兩先生之后相好公智崙十二代孫嘉善大夫承政院左承旨孝崗樛曾孫春圃益夏孫淸江得淳子也孝友天植生養以誠死葬以哀一根一靜不離繩尺嘗遭忌辰牝猫含雛徒隣三日復還其孝感微物如董邵南家風蓮村諱賢錫字應叟恪守庭訓叱咤之聲不及於犬馬邪僻之氣不設於身體定省無曠溫凊以時其丁母憂時値嚴冬涕淚漣漣曰親喪在殯爲人子者何忍着煖終以袗衣裳經冬其瘠瘦之容哭泣之勤傍人自是偏養老父宿患潦留三年臥褥畫夜不離湯劑米汁適調親口若有所願不顧家力之有無道路之遠近必獲乃己如生雉生鳩之自來及雪裡菜夏月蜜皆不時之需一一提供如王祥家事其孝感有如此者以壽階通政大夫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公之孫龍模亦以孝行聞不幸早夭其妻李氏星主台容女文景公稷后夫沒下從以烈命旌奇松沙宇萬撰記噫前有四世而創垂後有三世而繼之至使人人知所以爲父爲子爲夫爲婦之道而誦慕不已焉則其遺風餘韻曷不偉歟只褒與不褒特其餘事耳於二公何有哉其玄孫東館要余記余曾王考松村公與知然公契誼甚厚故不勝感舊之懷不敢以不文辭 戊申六月 傍孫 東勳 謹記 삼세효열록(三世孝烈錄) 노사 기문간공(蘆使)(奇文簡公)이 『조씨 四세 충효록서에 찬하되 이중 하나만, 있어도 족히 풍속을 올바르게 하고 세상에 모범이 될 터인데 하물며, 四대가 한 마음으로 이미 세우고 또 착실히 이었으니 정표하고, 혈식한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하였으니 아, 이로서 가히 할말을 다하였다 하겠다. 대개 그 근원이 깊은 고로 그 흐름이 길어 지연(知) 연촌(蓮村) 부자 二공의 효행과 손부 이씨의 절개는 어찌 그리 거룩한가. 옛적 민자건(閔子騫)의 효도를 공자(孔子)는 이론을 제기할 바가 없다고칭찬하고 하후령(夏侯令) 딸의 열행을 주자가(朱子) 「소학(小學)」에 기록하였으니 이는 만세에 전한 필법이다. 이제 두공의 효도는 종족이 믿고 향당이 칭도하여 九회나 천장을 올렸으니, 허식이 아니요. 실행이 있었음을 알것이다. 삼가 살피니, 지연의 휘는 재기(在璣)요. 자는 순칠(舜七)이며 농은, 건곡 두선생의 후예인 상호공(相好公) 지륜(智崙)의 十二대손 가선대부 승정원좌승지 효강(孝崗) 규(樛)의 종손이요 춘포(春圃) 익하(益夏)의 손자며 청강(清江) 득수(得淳)의 아들이다. 하늘이 낸 효자로 살아서는 지성을 다하여 봉양하고 죽어서는 슬픔으로서 장사하며 일거일동을 법도를 잃지 아니하고 제사날을 당하여는 암고양이가 새끼를 물고 이웃으로 옮겼다가 三일 후에 돌아온일이 있으니, 그 효도가 미물을 감동시킨 것이 동소남(董邵南)과 같다 하겠다. 연촌의 휘는 현석(賢錫)이요. 자는 응수(應叟)인데, 정성껏 부모의 가르침을 지켜, 꾸짖는 소리가 개와 말에게도 미치지 아니하고 간사하고 괴벽한 기운을 몸에 지니지 아니하며, 정성(定省)을 거른 일이 없고 더웁고 서늘하게 한 것을 때를 따라 하였다.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때마침 엄동설한 이었는데 눈물을 흘리며, 말하되 『어머니의 상이 빈소에 있는데 사람이 자식이 되어 어찌 차마 솜옷을 입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홑옷으로, 겨울을 지내서 그 파리한 용모와 애통 곡읍한 것이 보는 사람을 경동 시켰다. 이로부터 한마음으로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면서는 아버지가 오랜 병으로 三년을 요에 누워 계셨는데 밤낮으로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약과 미음을 어버이 구미에 맞게 조리하여 올리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가세의 유무와 도로의 원근을 따지지 않고 반드시 구하여 봉양하였다. 그러나 꿩과 산비둘기가 스스로 날아들고 눈속에서 채소가 나고 여름철 생청등 때아닌 물건을 얻어 일일이 봉공하기를 왕상처럼 하였다. 그 효도에 감응이 있어 마침내 수직으로 통정대부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을 제수하였다. 공의 손자 용모(龍模)가 또 효행으로 아름다운 명성이 있었는데 불행히 일찍 죽고 그의 처 이씨(李氏)는 성주(星主) 태용(台容)의 딸로 문경공(文景公) 직(稷)의 후예이다 지아비가 죽자 함께 따라서 죽어 열행으로 정표를 받고 송사 기우만이 기문을 찬하였다. 아, 앞에 四세가 창수하고 뒤에 三세가 계승하여 삼람으로 하여금 부자 부부의 도리를 알게 하고 외우고 생각하기를 그치지 않게하니 그 끼친 풍운이 어찌 장하지 아니 하겠는가 포양하고 포양하지 아니한 것은 그후의 일이니 두 공에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그 현손 동관(東館)이 나에게 기문을 청하는데 나의 증왕고 송촌공(松村公)이 지연광과 우의가 심히 두터웠다. 그래서 일어나는 회포를 이기지 못하여 감히 문자를 못한다고 사절하지 못한다. 戊申六月 방손(傍孫) 동훈(東勳)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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